서울에서 호프집 3곳을 운영하는 김모(32)씨의 하루는 이제 오전 10시에 시작한다. 저녁 장사에 익숙하던 김씨가 오전부터 부지런을 떠는 건 붕어빵 장사를 새로 시작한 때문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영업시간이 제한되면서 ‘코로나 겨울’을 버티려면 뭐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코로나19 이후 ‘청년 사업가’라는 자부심의 원천이었던 가게 3곳은 지금은 그에게 버거운 짐이 돼 있었다.
김씨는 6년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소규모 철판 요리 주점을 열었다. 회사 생활에 염증을 느낀 데다 월급쟁이 벌이로는 ‘집 한 채’ 구하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더해졌다. 이후 사업을 확장하며 가게는 3곳으로 늘었고 아르바이트를 제외한 상근 직원만 7명을 거느린 ‘사장님’이 됐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월 순이익 2000만원을 찍었던 가게들에선 더 이상 수익이 나지 않는다. 함께하는 직원을 바로 내보낼 수 없었던 김씨는 이전에 모아뒀던 돈으로 직원들 급여와 임대료를 충당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이제 겨우 안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쌓아놨던 자본금은 금세 바닥났다”며 “소상공인 정책자금을 포함해 2~3곳에서 조금씩 대출을 받기 시작한 것이 벌써 6000만원을 넘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이후 잠시 회복되는 듯 보였던 호프집 수익은 한 달 만에 다시 제로로 수렴했다. 김씨는 “버티기 위해 시작했던 붕어빵 장사로 하루 40만원을 번 적도 있다”며 “호프 3곳에서 나온 매출보다 많을 때도 있다”며 씁쓸히 웃었다.
그동안 청년 부채 문제는 가난의 대물림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특히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해 안정적인 기반을 닦지 못한 청년 자영업자들이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에서 생필품 도소매업체와 주점 4곳 등을 운영했던 박모(29)씨는 지난해부터 배달라이더 일을 시작했다. 그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연 19억원까지 불어났던 총 매출 규모는 지난해 3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사업을 유지하기에도 부족한 액수였다. 10명이 넘었던 직원은 1명만 남았고 주점 2곳을 정리했다. 그런데도 임대료 등 유지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직원 중 1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박씨가 코로나 사태 이후 제2·3금융권에서 빌린 대출금은 2년여 만에 2억5000만원으로 불어났다. 한 달 300만원에 달하는 이자를 갚기도 버거워 박씨는 배달라이더로 일하며 다른 주점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연체가 이어지면서 800점대 후반에 달했던 그의 신용 점수는 100점대로 떨어졌다.
박씨처럼 금융사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20, 30대 다중채무자들의 빚덩이가 코로나 사태 이후 늘고 있는 것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지난해 10월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2030 다중채무자의 수는 132만7155명에 달했다. 전 연령 다중채무자의 30.4%에 달한다. 학자금 대출을 채 갚지 못한 상황에서 안정적인 신용을 쌓지 못한 청년들은 급한 대로 이곳저곳에서 돈을 당겨다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채무액 증가 속도도 다른 연령대에 비해 빨랐다. 코로나 사태 직전인 2019년 12월 124조6464억원이었던 2030 다중채무자들의 채무액은 2021년 6월 기준 20.5% 급증한 150조2629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전 연령 다중채무자 부채액은 523조7687억원에서 581조1756억원으로 늘어나 증가폭은 11% 수준이었다.
박씨는 “라이더 일을 하러 간 곳에서 호프, 주점 등 저녁 장사를 했거나 하는 또래 점주들과 숱하게 마주쳤다”며 “대학교 3학년 때 시작해 한때는 희망이었던 내 일이 이제는 삶의 족쇄가 됐다”고 말했다. 그가 배달 현장에서 만난 한 동료 점주는 장사를 정리하고 파산 신청을 했다. 박씨에 따르면 그는 소득이 발생할 경우 법원에서 파산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봐 자기 이름이 아닌 차명으로 배달라이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청년 자영업자들은 장사를 이어온 기간, 이른바 ‘업력’이라는 게 짧을 수밖에 없다”며 “위기가 닥쳐왔을 때 이를 버텨낼 자본과 기반이 약해 더 쉽게 부채의 늪으로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청년 부채 지원 단체들은 코로나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청년 자영업자들이나 무직 청년들을 중심으로 올해 혹은 내년부터 개인파산 및 회생 신청이 급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과거 IMF 외환위기 때처럼 코로나 사태가 끝나도 그 과정에서 얻은 경제적 타격의 후유증이 오래 남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청년을 상대로 부채 문제 상담을 해 온 최봉석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상담관은 “현재도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정부재난지원금이 사업 정상화 자금이 아닌 임대료, 대출 이자료 등 금융 자금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체질 개선이 되지 않다 보니 빚으로 빚을 막는 돌려막기 악순환이 계속된다. 누적된 채무는 코로나 이후 청년 파산을 급증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실이 4일 대법원에서 받은 20대 청년 파산 신청 건수는 2020년 884명으로 관련 통계를 집계한 지 9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지난해 1~11월엔 902명으로 11개월 만에 전년 최대치를 경신했다.
최 상담관은 청년 재무상담 및 금융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고금리 대출을 받았다가 높은 이자를 감당 못 해 자포자기 심정으로 가상화폐 투자나 빚내서 투자해 더 빚을 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낮은 신용 점수 등으로 제2·3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공공영역에서 재무상담을 거쳐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가용소득이 보장되도록 계획을 세워주는 대안 신용대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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